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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7
ISBN 979-11-9655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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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편지1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1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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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끌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우리가 만난 시간을 기억할 때마다 잠깐은 함께일 거예요.”

과거이기만 한 이름들에 부치는 스무 통의 편지

어디에 있어도 여기엔 없는 얼굴들. 기억 틈새에 끼어있는 이름들. 도티끌만의 섬세한 시선으로 묵은 먼지를 털듯, 묶은 매듭을 끄르듯, 과거이기만 한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낸다. 그의 편지에는 더는 볼 수 없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 역학관계에 취약한 10대들의 소심하고 사악한 면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이질감, 사회 곳곳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존경 혹은 피로가 녹아있다. 굉장히 사적인 기억이지만 어디선가 한 번은 겪었을 법한 우리의 이야기. 그래서 누구의 가슴을 다 만지고 갈 수 있는 이야기. 과거 속 작은 조각 안에 박혀있는 등장인물들을 꺼내 그때의 나와 압축된 시간을 확장해보는 경험을 이 책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아버지께 _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저는 알아요.
혜진에게 _너도 내가 만날 사람이었을까.
시영에게 _꿈에서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교수님께 _저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세화에게 _누가 내게 그런 걸 가르쳤지?
지훈에게 _드디어 만난 거야. 친구 같은 친구를.
유경에게 _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비웃는 게.
실장님께 _혹시 고마우셨을까요?
다움에게 _시기 질투 없이 반짝이던 눈.
태민에게 _네가 없었어. 너만 없었어.
무제에게 _연애하는 거, 모세의 기적 아니야?
인아에게 _나를 교묘하게 소비하고 있었던 거야.
미현에게 _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었지.
강사님께 _네? 뭐라고요? 제 귀를 의심했어요.
아저씨께 _고시원의 급은 창문의 유무로 나뉘어요.
경미에게 _내가 당한 게 아닌 데도 상처받거든.
숙희에게 _그 작은 머리로 고민을 하고 만 거야.
영은에게 _너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거라는 예감.
희영에게 _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나버렸어.
할머니께 _꼭 소풍을 온 것 같았어요.

🔎

내가 없는 세계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나의 어떤 날을 즐겁게 회상하는 이가, 한때 내 것이었던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요. 죽은 사람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며 정색하는 어른들을 본 적 있어요. 사자(死者)의 흔적을 샅샅이 지워내려고 사진이건 물건이건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리고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영영 죽는 것 같잖아요. 또렷이 존재했던 삶마저도 없어지는 것 같잖아요.

_9쪽, 「아버지께」 중

 

어떤 순간은 애초에 기대된 적도 없으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그럴 때가 있잖아. 별생각 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반가운 걸 발견할 때. 익숙하든 낯설든 우연히 발견한 반가움은 마치 오래전부터 내가 기다려온 존재라는 착각이 들어. 언제든 결국에는 나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고,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_15쪽, 「혜진에게」 중

 

꿈에서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네가 저기 서 있어도 나는 너를 시영아, 부르지 않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상할 게 없지. 우리는 그랬으니까. 나의 꿈은 무의미해서 너의 출현에 특별한 사유를 붙일 수는 없지만, 네가 나오는 간밤에서 깨어나면 얼마간은 너를 생각해.

_24쪽, 「시영에게」 중

 

습관처럼 내뱉던 미안하다는 말 뒤에는, 작은 눈을 더 가느다랗게 만들어 살며시 웃던 표정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예민한 귀로 세상을 꼬박꼬박 들으면서도 입으로 내뱉기는 차마 쑥스러워서 손으로 무언갈 적고 있을까. 아직 시를 쓰고 있을까.

_96쪽, 「미현에게」 중

 

편지를 쓰기 전 너와 너의 집을 골똘히 떠올려봤어. 그랬더니 어떤 냄새가 나더라. 너에게서, 너의 집에서 나던 냄새가 훅 끼치는 거야. 네 나풀거리는 단발머리에서 나던 따뜻한 비린내가. 그 냄새에 내 기억을 실어 보낼게. 너 아닌 모든 것에게.

_119쪽, 「미경에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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